
카이온지 쵸고로(海音寺潮五郞, 1901~1977)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소설. 우에스기 겐신의 일대기를 그리며 타케다 신겐이 그의 숙적으로 등장한다. 소설적 재미는 상당한 편. 다만 너무 겐신 찬양 일색이라서 가려 읽을 필요가 있다.
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1990년작 영화. 카도카와 쇼텐의 2대 사장인 카도카와 하루키가 제작, 감독을 맡았고, 에노키 타카아키가 주연을 맡아 우에스기 겐신으로 출연했다. 다케다 신겐 역은 츠가와 마사히코가 연기했다. 음악은 당시 한창 잘나가던 코무로 테츠야가 맡았다.
당시 일본 영화사상 최대인 50억엔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제작비에 걸맞게 흥행수입 92억 엔(배급수입 50억 5천만 엔)의 엄청난 대박을 내면서 개봉한 해 일본에서 영화 흥행 순위 2위를 차지했다(출처). 이는 2024년 현재 역대 일본 자국영화 흥행 순위 25위, 애니메이션을 제외할 경우 6위에 해당한다.
카와나카지마 전투의 촬영을 캐나다에서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든 스탭과 기자재, 소품 일체를 캐나다까지 옮겨가서 찍느라 이 로케이션에만 제작비의 절반이 들어갔다고 한다. 캐나다까지 간 이유는 일본에서는 대규모 전투를 찍을 넓은 들판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중국에서 촬영할 계획이었지만, 먼저 중국에서 현지 촬영을 했던 <둔황>의 제작 과정에서 스텝들이 제작비를 횡령당하고 촬영 장비들을 기부 명목으로 뜯기는 등, 현지 횡포에 학을 뗀 사연이 전해지면서 캐나다로 장소를 바꾸게 된다. 전투 장면은 500마리의 말과 30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서 찍었다.
원래 주연은 당시 NHK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1987)의 주인공 다테 마사무네를 연기해서 큰 인기를 얻은 와타나베 켄이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촬영을 진행하던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해 귀국하는 돌발사태가 일어난다. 대체역으로 처음 고려된 것은 마츠다 유사쿠였지만, 당시 이미 방광암 말기였기 때문에 영화에 출연할 수 없는 상태였다(1989년 11월 사망). 결국 긴급 오디션을 통해 뽑힌 에노키 다카아키로 주연이 교체된다. 영화가 개봉한 후에도 와타나베 켄이 주인공을 맡았더라면,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고, 본인도 오랫동안 이 때의 아쉬움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상영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하이라이트인 카와나카지마 전투는 CGI가 보편화된 요즘의 전쟁영화와는 맛이 다른 웅장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이 전투 장면은 특히 영화 <워털루(1970)>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온통 빨간색을 두른 다케다 신겐 군과 검은색의 우에스기 겐신 군이 초록 들판 위에서 격돌하는 선명한 색의 대비가 장관이다. 광활한 평원을 배경으로 다케다 신겐의 어린진(魚鱗の陣)과 우에스기 겐신의 차현진(車懸りの陣)을 실제 인원과 말을 동원해 재연해내서 전국시대 전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찍은 곳이 북미 평원이다보니,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이질감이 크다. 이 영화의 전투신은 이후 꽤 많은 시대극 작품에서 재활용되기도 했다. 버블시대가 끝난 후 이런 스케일로 다시 작품을 찍는다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수려하고 웅장한 장면도 많고 의상과 미술에도 큰 공을 들였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을 하나로 꿰어줄 드라마가 워낙 얄팍하다보니 안타깝게도 감독 말대로 딱 프로모션 영상 정도의 감흥밖에 느낄 수가 없다. 잘 만든 30초짜리 광고들을 2시간 동안 이어서 보는 느낌이랄지. 그래서 1980년대 카도카와 영화 재조명할 때도 거의 조명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