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림 전쟁 중이던 1854년 10월 25일, 크림 반도의 도시 세바스토폴의 외곽 발라클라바에서 연합군과 러시아 제국군간에 벌어진 전투이며, 이전 알마 전투에서 승리하여 크림 반도에 상륙한 연합군은 흑해의 군항인 세바스토폴 요새에 포격을 가했다. 이후 포위전에 돌입했으나 포위선 외곽에서 재편성을 하고 고지대를 장악한 러시아 제국군을 영•불•오스만 연합군은 뒤늦게 추적하여 조우했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인류 군사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경기병 여단의 돌격" 사건으로 인해 영국, 프랑스, 오스만군이 어처구니 없이 패배한 전투이다. 희대의 막장 지휘 혼선을 보여준 "경기병 여단의 돌격" 이전에 매우 성공적이었던 "중기병 여단의 돌격"이 있었기에 더욱 그 악명이 두고두고 회자된 전투로써, 군사 전문성의 중요성을 확연히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크림 전쟁 당시에는 연합군이나 러시아 제국군의 높은 직위는 귀족 출신들이 지휘권을 잡았다. 그로 인해 결국 말단 장교와 사병들만 죽어 나갔던 것도 똑같았으나, 발라클라바 전투가 특히 유명한 이유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적의 포대를 향해 방열한 사선으로 걸어들어간 영국 육군 경기병대의 행동, 그리고 이 황당한 돌격 바로 전에 중기병 여단의 효과적인 돌격이 있었기에 서로 너무나도 비교되는 탓이다.
이 정도로 명백히 불합리한 명령은 일선 지휘관의 재량으로라도 거부했어야 옳지만, 당시의 군법은 이런 일선 지휘관의 재량을 통한 명령 수정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었고, 전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은 귀족 출신 고위 장교들은 대부분 까라면 무조건 깐다. 정확하게 까라는 대로만식의 매우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을 고수했다.
이 황당한 경기병 여단의 돌격 바로 전에 있었던 "중기병 여단의 돌격"을 지휘한 제임스 요크 스칼렛 경은 귀족 출신임에도 대학에서 비교적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경험한 인물이었고, 스칼렛 경이 지휘한 이 돌격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점에서, 발라클라바 전투는 유독 비전문, 비효율적인 지휘로 악명이 자자하다. 그리고 이 스칼렛 경이 지휘한 중기병 여단의 돌격 또한 다른 지휘관들의 "까라는 대로만 깐다"는 사고 방식 때문에 추가적인 주변 병력 투입을 통한 전과 확대에 실패했다. 덕분에 경기병 여단의 돌격이라는 희대의 참사를 덮고, 전투를 승전으로 이끌 수는 없었다. 경기병 여단의 돌격은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중기병 여단의 돌격에서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다면 어처구니 없는 패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었다.
1968년 영화인 <경기병대의 돌격>에서 이 돌격의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연락 담당을 맡았던 놀런 대위가 장교들의 태도에 열받은 나머지 잘못된 돌격 목표를 가리키는 만행과 같이 가다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 말리려고 했으나 결국 유탄에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